diletant의 제.멋.대.로 쓰는 이야기

정신없던 10월이 지나고 이제 11월이 됐다.

연주회가 끝난지 나흘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그 기분에 젖어있나보다.
같이 했던 여러 사람들이 보고도 싶고...

훗...
내가 연주회 애프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먼저 뭘 했냐면
손톱깎이를 꺼내서 손톱을 깎았다.
할 일이 많은데 손톱이 남아있으면 계속 기타를 붙잡고 있을 것 같아서.
그래도 평소보다 2밀리는 더 긴데...
낮에 기타를 한번 튕겨봤더니 펑펑거리는 소리가 나더군...

지나고 나면 나쁜 것은 다 잊어버리고 좋은 것만 머리에 남나보다.

일요일마다 합주 연습에 사람들이 안 와서
합주 아닌 4중주 연습을 할 때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나도 집에서 눈치 보면서 나왔는데...
내일 낼 리포트도 하나도 안 썼는데...
이제 한 달도 채 안 남았는데...
도대체 안 나온 사람들은 뭐야!

연주회 당일도 아침 10시까지 오라고 해서 헉헉거리며 갔더니
이게 뭔 일?
유림아트홀 문은 굳게 잠기고, 우리의 대장은 어디에?

그래도 어쨌든 연주회는 끝났다. 비교적 무사히...
무대에 올라가서 기타를 치는데 기타는 왜 자꾸 앞으로 미끄러지나 몰라...
치다가 쓱 잡아다니고 휴우...
중주 첫 곡을 치는데 아무 생각이 없었다.
떨리는 건지 안 떨리는 건지...
연습 때 항상 틀리던 곳이 있었는데 무사히 넘어가야 되는데...
두 번째 곡 끝나서야 조금 여유가 생겨서 관객석 앞도 한 번 쳐다보고...

그리고 합주.
##님의 고갯짓에 첫 음을 땅~ 쳤는데 으잉?
어째 퍼스트 세 명의 소리가 다 제각각이다냐?
음... 불길하군...
손에는 자꾸만 땀이 나서 미끄러질락말락하고..
예상은 했었지만 뒤에서 누구 쫓아오는 사람 있나? 왜 자꾸 빨라져?
엄청난 가속도...

그래도 마지막 곡 로스 어쩌구저쩌구는 여유있게 칠 수 있었다.
내려오기 전에 신나게 한 번 치고 내려가야지... 쿵짝짝 쿵짝짝...

1차로 밥집에서 밥들을 먹고
2차는 맥주집에서 뒤풀이...
어휴... 나는 이런 분위기를 너무 좋아한다니깐...
기타가 좋고 기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고... 술도 좋지?
그래서 내가 10년이 지나는 동안 기타와 기타인들을 사랑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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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회가 끝나고 나니...
내 앞에는 미뤄둔 숙제 더미와 감기만 남아있다.
(지금 심한 목감기에 걸려서 목소리도 제대로 안 나옴)

그래도... 노랗고 빨간 낙엽이 쌓인 휴웃길을 걸으면
원래 예정에는 없었던 지금의 이 시간들이 마냥 소중하게 느껴진다.

원래대로라면 지금은 회사에서 7년차 고참사원(재수 좋았으면 신참대리)이 되어서
종종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며 창 밖으로 지나가는 가을을 아쉬워하고
집에 돌아올 때마다 세워둔 기타 케이스를 보며 한숨을 쉬고 있을텐데...

낮에 집에서 통신도 하고...
도서관에 가서 리포트도 쓰고...
시간을 내서 기타도 치고...
사실 신선이 따로 없지 뭐...

후후...
지금 학생인 사람들은 모를 거다.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5년 동안 '돈벌다' 온,
그것도 임시로 3년 동안만 돌아와 본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들인데...

예전엔 음산해서 싫어했던 11월.
하지만 11월에는 봄의 화사함도, 여름의 분주함도, 가을의 청명함도, 겨울의 매서움도 없어서 좋다.
정신이 번쩍 들 만큼의 싸늘함이 있어서 좋다.

입으로만 바쁘다고 외면서 정작 소중한 시간들을 쪼개서 흘려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우누리 기타피아>

## 1996년 제1회 CAF 중 기타피아 연주회

일시 : 1996. 10. 27 (일) 늦은5시
장소 : 압구정동 유림아트홀

2중주
[Liebestraum] F.Listz
[Cubana] Cuban Traditional
[Cavatina] S. Myers

합주 (1st)
[Orchestral Suite No.3] J. S. Bach
[Rumba Flamenca] Flamengo
[Los Piconeros] Flamengo

* CAF(Cyber Art Festival) : 나우누리 예술관련 동호회들의 연합행사입니다.

뒷얘기 2001/07>
이 때가 7년만의 기타 합주라는, 제겐 아주 뜻깊은 연주회였죠.
덕분에 한동안 잊고 지내던 기타의 나락;;;에 굴러 떨어져
오늘날까지 이렇게(...어떻게???) 살고 있는 중입니다. ^^;

2007/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