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 했던 ㅌ동이 나흘 전 문을 닫았다. 그것도 하룻밤 사이에 날벼락처럼.

우연하게 발 들인 취미생활(!) 때문에 알게 된 곳이고 단순한 친목동이 아닌 '특수목적동'이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느새 게시판에서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는 게 더 좋아서 다니게 된 곳이었다. (자연스러운 흐름이긴 해도, 운영진들에게는 미안하다면 미안한 일이지...)

나이는 스물 이상, 나이차 범위 20여 년 정도, 대부분 여자들, 같은 취미 공유. 동 안에서는 지켜야 할 규칙 많음. 그리고 온라인. - 이런 조건들이 만들어낸 독특한 분위기랄까. 아주 자유스럽게 내 할 말 다 할 수 있는 곳과는 조금 다른 곳이었지만, 나는 그런 분위기가 꼭 싫지만은 않았다. 물론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참으로 다양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그 모든 사람들을 다 좋아할 수는 없었지만.

몇년 전 한참 활기차게 돌아갈 때는 하루에 게시판 글이 열 페이지도 넘게 쌓이곤 했던 곳인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의 발길이 차츰 뜸해지고 분위기도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래도 마음 속에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내집'처럼 자리잡고 있던 곳. 글을 남기지 않더라도 하루에 두어 번은 발자국 찍었고, 딴 동호회에 드나들면서도 그래도 '맨처음'으로 생각나던 곳.

익명의 탈을 쓰고 아무 말이나 뱉어내는 사람들만큼 무서운 것이 있을까. 별로 상관없이 시작된 얘기에서 갑자기 물줄기를 틀어서 밤새 말로 돌팔매질을 해댄 끝에 문 닫게 된 그곳을 보며 어찌나 허탈하고 속상하던지. 그리고 온라인 상에서 맺고 있는 모든 관계들의 허망함이 어찌나 뼈저리게 느껴지던지.

물론 그 하룻밤의 일이 모든 원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살할까 말까 망설이면서 높은 곳에 서 있는 사람, 혹은 불치병에 걸려서 삶이 단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을 떠민 자는 엄연히 살해범인 법. '넌 어차피 죽을 거였으니까 난 죄 없어'라니, 뚫린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다 해도 되는 게 아니다.

그곳에서 만난 분들 중 몇몇 분은 앞으로도 이곳에서, 혹은 다른 집에서 뵐 수 있겠지만, 얼굴도 이름도 모르고 아이디만 낯익은 많은 분들, 그분들과 나눴던 얘기들이 정말이지 그립다.

diletant | 2007/03/22 23:52 | 혼자 끄적대기 - 끄적 | 트랙백 | 댓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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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손 2007/03/23 19:25 x 안녕하세요. 집 잃고 난민 된 기분으로 기억나는 주소들 찾아 다니다 왔습니다. 달리 다니는 동이 없어서 상황도 모르고 어리버리 하다 라키님 홈 찾아가서 대략의 상황설명을 들었습니다만.... 아직도 마음 한구석이 휑 하네요...ㅜ.ㅜ diletant 2007/03/24 03:00 x 하얀손님/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ㅌ동에 계시던 분들은 아마 한동안은 후유증에 시달리실 분 많을 것 같습니다. 저를 비롯해서 말이죠. 스니키 2007/03/24 16:07 x 저역시 활동무대야 있지만.... 낯익었던 여러분들과 다시는 못볼꺼라 생각하니 조금 아쉬워요. 온라인 관계라는 게 이런식으로 끊기는 구나 싶기도 하고... diletant 2007/03/25 00:07 x 스니키님/ 무엇보다도 몇년 동안 인터넷에 들어오면 고정적으로 드나들던 곳이 없어져서, 마치 미아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쓸쓸하네요. istary 2007/03/26 23:13 x 온라인의 한계를 느꼈죠..저야 뭐 그나마 연락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좀 있어서 다행이지만,그래도 허전한 건 허전한 것.아이디만 아는 사람들도 많아서 서운하기도 하고..에효; 약토끼 2007/03/27 00:48 x 뭔일인지도 모르고 붕 떠버렸답니다;;;;;; ..없어져서 좋은(?)점이라면, 그저 컴퓨터 붙들고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다른 일을 한다, 뿐입니다. 슬픈점은... 소소한 수다를 풀 곳이 없어요.... diletant 2007/03/27 09:27 x istary님/ 개인적으로는 ㅌ동 기혼녀분들(한 사람 빼고...;;;)을 더이상 만날 수가 없어서 그게 서운합니다. 다들 자주 글을 올리시는 분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쩐지 동질감이랄까... 그런 게 있어서 그분들 가끔씩 소식 올라올 때 좋았거든요. 약토끼님/ 저도 수다를 풀 곳이 없어서 욕구불만(?!)이 쌓이고 있습니다. 물론 제 집도 있고 모모홈도 있고 또 다른 곳도 있지만, 왜 얘기라는 게 이런 얘기는 여기서 풀어놓는 게 더 익숙한 곳이 있고 저런 얘기도 거기에 맞는 곳이 있고... 그렇잖아요. 이름 ::   비밀번호 ::   홈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