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이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막 나오는 상대한테는
도저히 당할 길이 없는 거구나.
지금까지 본 중에 가장 막무가내인 존재를 오늘 본 기분이다.
하필 그 희생양이 된 것이 연아란 것이 너무 마음 아프다.
러시아 선수 그 연기에 말도 안 되게 점수를 퍼 줄 때부터 온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하더니
모든 결과가 나올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그 순간 아마 몸이 먼저 이리 되리라는 걸 짐작했나보다.
다시 도전하지 않아도 되는 두 번째 올림픽에 연아가 나오겠다고 얘기할 때부터
그것만으로도 너무 고맙고 미안했고
그 연기를 조금 더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뻤다.
메달?
욕심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사실 어떻게 메달까지 욕심을 내겠나 하는 게 솔직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연아는 거짓말처럼 예전 모습, 아니 더 깊어진 모습을 보여줬고
금메달이 욕심 나서가 아니라
한 차원 다른 연기를 보여주는 저런 선수가 메달을 따지 않으면
그건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차라리 마지막 연기에서 한 가지라도 실수를 했다면...
아니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점수를 받은 그 선수가 점수에 걸맞는 연기를 했더라면...
그러면 어떤 색깔의 메달이라도 기쁘게 축하해줬을 텐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질 줄은 생각도 못했다.
설마 이 정도로 양심이 없진 않겠지 생각한 내 자신이 우스워질 정도로
상대는 양심 따위 애진작에 내던진 존재였는데 말이다
연아야.
2007년 3월 어느 날, 저녁 뉴스에 나온 록산느를 본 그 순간부터 오늘까지
정말 수많은 순간을 행복하게 해 줘서 고마워.
오랫동안 잊고 있던 피겨의 아름다움을 다시 만나게 해 줘서 고마워.
한국이라는 피겨 변방국에 어느 날 뚝 떨어진 존재인 탓에
참 힘들고 불합리한 상황에 많이도 놓였는데
그때마다 한번도 남 탓을 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네게
얼마나 많은 걸 배우고 존경했는지 모른다.
오늘 같은 날은 차라리 원망 한마디쯤 솔직히 말했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지만.
이제 '피겨 선수'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릴 네가 어떤 길을 가든 응원할게.
김.연.아 석 자 앞에 어떤 수식어도 붙지 않은 그 상태로 늘 행복하렴.
+ 2/21 23:35
팬카페 대문을 보고 아차 싶었다.
가장 중요한 말을 잊었다.
연아야, 올림픽 2회 연속 입상한 것 진심으로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