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좋은' 과외팀에 넣으려면
그 과외 진도 맞추려고 또 다른 과외 붙여야 한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청소 서비스 맡기는데 집이 너무 더러워서 애벌청소 한다는 말은 들어보셨는지...;;;;;

이번에 추석맞이 집 정리 및 대청소를 시작하면서 계획을 4주로 잡았다.
지난 설에 한 열흘 생각했다가 시작도 못 하고 망했거든.
그리고 일단 청소가 문제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버리기'임을 느꼈고.

정말 독하게 맘 먹고 책을 버렸다(정확히는 많이 팔고 적당히 주고 쫌 버렸음).
처치할 책을 골라내고 다음 날 또 책장을 보고 또 골라내고 또 골라내고...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땐 내가 진짜 이 책을 전혀 안 봤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면
(대부분은 목차 읽고 훌훌 훑어보다가 그냥 덮었고 전혀 안 본 책은 손이 안 가는 책이고)
곧 답이 나왔다.

그리고 가장 마음 먹기 힘든 책을 버리고 나니
다른 물건에 대한 아까운 마음은 요만큼도 일지 않았다. -_-;;;

냉장고 텅텅 비우고
이쪽 저쪽 베란다에 그저 쌓아두기만 했던 물건들 싹 다 버렸다.
자료라고 생각해서 가지고 있었지만 10년 동안 볼 일 없던 회지도 버렸다.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기념품도 버렸다. (선물은 그저 쓰고 없앨 수 있는 게 최고였음)
수십 년 전에 복사해 놓고 '언젠가는' 칠 생각이었던 낱장 악보도 버렸다.
결혼하면서 산 전축이 말썽을 부려서 몇 년 만에 버리고 난 다음에는
한 번도 듣지 않은, 아니 꺼내지 않은 옛날 레코드판도 버렸고
30년 전 클래식 테이프랑 20여 년 전에 녹음했던 테이프도 다 버렸다.
국민학교 적 것까지 있던 편지랑 카드도 버렸다.
그밖에 비슷한 내용 다수......

이제 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다.
대체 몇 년 동안이나 폐인 생활을 한 건지 원.

난 원래부터 사소한 물건 하나까지 의미를 부여해서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마흔이 넘은 어느 날, 깨달았다.
내일 당장이라도 인생이 끝일지도 모른다는 걸.
그리고 중딩 때 썼던 일기장은 남 뵈기에 너무 쪽팔리다는 것. (당장 없앴다;)
거기서부터 서서히 발전해서 오늘날 이 '버리기' 프로젝트에 이르렀다.
역시 중년은 인생의 전환기다. 음.

내일 청소 서비스 받을 거고
금요일까지 싱크대 속이랑 냉장고 정리 마무리할 거고.
그러면 남은 건 옷 정리랑 책 아닌 낱장 자료들 정도가 되겠다.

성격상 콘도 같은 집은 무리겠지만
간결하게 살 생각이다.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라는 전제가 붙...;;;


+ 09/11
4명이 7시간 반 작업.
한마디로 소감을 말하자면 '돈 쓸 만하네'.
모든 물건을 다 빼내고 탈탈 터는 게 아니라서 한계는 있지만
나 혼자는 도저히 엄두도 못낼 양과 질의 청소를 해 줬다.
몇 년 동안 창틀에, 유리에, 가구 밑에, 틈새에 낀 더러움과 먼지가 싹 없어진 우리 집은
아무리 봐도 우리 집 같아서 적응이 안 되는 단점이 있지만.

diletant | 2013/09/09 23:27 | 혼자 끄적대기 - 끄적 | 트랙백 |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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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tary 2013/10/02 22:02 x 우와..저도 간결한게 좋은데,진짜 버리는 것도 체력이 필요하더라구요. diletant 2013/10/06 11:24 x istary님/ 버리는 거, 쉽지 않더라고요. 시간 필요하고 체력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고요. 잘 지내시죠? ^^ 이름 ::   비밀번호 ::   홈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