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주위 사람들에게 아이들 책은 전집으로 사 주지 말고 낱권으로 사 주라고 마르고 닳게 외치고 다니는 사람이 되었지만, 내게 있어 [전집]이라는 말은 어렸을 적의 설레임, 그것의 또다른 이름이다.
우리집에 고정적으로 오시는 "책 아저씨"가 계셨는데, 그 아저씨가 책 한 상자 짊어지고 오셔서 놓고 가시면 상자 테이프를 좍~ 뜯을 때의 그 기분. 그리고 상자에서 꺼내지도 않고 한 권씩 빼내어서 미칠듯이 읽어나갈 때의 그 기분이란...
... 같은 책을 몇 년 뒤에 똑같이 보고 자란 막내동생은 절대 못 느꼈을 느낌.
... 가끔은 동생에게 미안한 생각도 든다. ^^

아마 요즘 아이들은 읽을거리, 볼거리가 주위에 널려 있어서 똑같이 책 한 상자가 주어져도 그런 설레임을 별로 못 느끼리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한번쯤 그런 기회를 주어보면? 그런 생각도 가끔 하곤 한다.

수다는 이 정도로 그치고...
예전에 우리집에 있었던, 그리고 나 어렸을 적을 떠올리면 함께 떠오르는 책들을 적어본다.


## 안데르센 동화전집 (신진출판사, 전 10권)
아마 초등학교(그땐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에 샀던 걸로 기억한다. 속까지 두꺼운 종이로 되어있는 열 권짜리 전집. 군데군데 낙서도 해 가면서 즐겨 읽었던 책.
지금은 거의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엄지공주, 미운 오리새끼, 눈의 여왕, 외다리 병정, 그리고 많은 얘기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열심히 읽어제꼈던 그 책들.


## 세계명작동화전집 (?, 전 10권)
안데르센 동화집 다음에 샀던 것 같다. 이번에는 비교될 만큼 질나쁜 속지. (덕분에 툭 하면 쭉쭉 찢어져서 온통 테이프 투성이가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다른 전집에 없는, 흥미진진한 동화가 꽤 많이 들어있어서 나를 즐겁게 해 준 책.
이 책으로 피노키오를 처음 만났고 장미와 반지, 플란더즈의 개, 해저 2만리, 모히칸 족의 최후, 비밀의 화원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우주 전쟁과 말코트 심해라는 두 편의 삽화가 너무 생생하고도 무서워서, 덕분에 그게 들어있는 두 권을 볼 때엔 삽화가 안 펴지도록 엄청 애썼던 기억도... T_T

+ 2013/12/01
자료를 찾다가 금성출판사 '칼라명작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전 30권)' 관련 포스팅을 보았다. 일본 소학관에서 나온 전집의 복제판이라는데, 권수는 다르지만 표지 모습이나 몇몇 작품의 삽화(모히칸 족의 최후), 작품이 일치하는 걸로 봐서, 우리 집에 있던 전집도 이것을 발췌복제(!)한 책이었던 듯하다.
요즘도 가끔 금성출판사 전집을 찾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렇게 옛날 책을 뭐하려고 싶었는데, 사진을 보니 삽화가 예술이로세...


## 컬러학습대백과 (계몽사, 전 10권)
가나다 순으로 되어 있고 제목 그대로 컬러사진과 설명이 들어있는 초등학생용 백과사전인데, 이 책 얘기를 하자면 또 남동생 얘기를 빼 놓을 수가 없다.
남동생이 유치원 다닐 때쯤 해서 이 책이 우리집에 왔는데, 지금 곰곰히 생각해 보면 약간의 영재끼가 있었던 남동생은 유독 이 책을 좋아해서 낮이나 밤이나 붙잡고 살았고 급기야는 내용을 줄줄~ 외울 정도가 됐다.
...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난 그때부터 남동생에게 일종의 머리(?!) 컴플렉스를 가지게 됐다... T_T
마분지 비슷한 두꺼운 종이로 되어있던 백과사전은 완전 낱장 분해 상태. 그걸 알게 된 책 아저씨(위에서 얘기했던...)는 비록 중고지만 거의 새 책과 다름없는 것으로 한 질을 더 구해다 주셨다. 똑같은 책을 두 질이나 보는 집은 처음 봤다고 감탄하시면서.

후일담...
그 사연 많은 컬러학습대백과가 얼마 전 우리집에 들어오게 되었다. 물론 옛날에 보던 그 책은 아니지만.
딸내미와 우리 단지 안의 어떤 동 앞을 지나는데 현관 구석에 버리려고 쌓아둔 책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컬러학습대백과였던 것이다!!!
순간 두 눈이 반짝반짝하면서 (만화를 상상하시라...) 안을 들춰보니 숙제에 썼는지 권마다 사진 몇 장 오려낸 것 말고는 새 책이나 다름없는 깨끗한 상태.
사실 개정판이라고는 하지만 워낙 예전에 나왔던 책이라서 백과사전으로서의 기능은 좀 떨어졌겠지만, 옛날에 재미있게 보던 그 추억 때문에 그 큰 책 열 권을 낑낑대면서 집으로 들고 왔다... ^^;;;


## 세계명작동화전집 (육영사, 전 30권)
그무렵 대부분 다른 집에는 주황색 표지의 계몽사 전집이 있었는데, 엄마는 특이하게도(... 아마 책 아저씨가 골라주셨겠지만서도..) 30권짜리 이 전집을 사 주셨다. 덕분에 친구집에만 놀러가면 계몽사 전집 하나씩 빼 보느라 정신없었던 생각이 난다.
이 전집은 나중에 알고 보니 대부분 완역에 가깝게 나온 책이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요새 나오는 책에도 마구잡이 잘린 번역이 많은 터라...

지금은 막내동생 책장에 잘 간수된 이 책 중에서 생각나는걸 적어보면...
- 빨간머리 앤
- 키다리 아저씨
- 하이디
- 작은 아씨들
- 나는 교실
- 하릅 사슴
- 위대한 왕
- 하얀 엄니
- 도련님
- 세익스피어 이야기
- 오딧세우스

그리고 또... 또...
30권인데 이것밖에 생각이 안 나다니... ㅠ_ㅠ



## 세계위인전집 (육영사, 전 30권)
어른들은 위인전집을 사 주면서 내심 아이들이 훌륭한 인물들을 본받았으면 하고 바라겠지만, 나만 보더라도 나중에 기억나는 것은 위인전집에 나오는 사람들의 훌륭한 점보다는 주로 재미있던 에피소드라던가, 먹을 것 이야기가 대부분이니 부모님들은 너무 큰 기대를 마셔야 할 듯. ^^
예를 들어서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것은...
케네디가 어릴 적에 형하고 초코크림파이를 가지고 다투었다든가, 베토벤이 큰 도시에 올라와서 얼마 없는 돈으로 정식을 시켜서 접시에 국물까지 빵으로 싹싹 닦아 먹었다든가, 퀴리 부인이 파리에 유학왔을 때 버찌와 무, 차만 먹고 버티다가 기절했다든가...
그만 써야겠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본성에 충실한 인간인 듯... --;;



## 한국위인전집 (?, 전 15권)
그냥저냥 읽었던 책. 나라를 세운 사람들이 제일로 많이 나왔고, 그 다음은 소위 명군이라고 불리는 왕 이야기, 가끔은 발명가(장영실), 음악가(박연) 이야기도 있었고 애국지사라고 하는 사람들(유관순, 김성수;;;, 김활란, 김마리아)도 있었고...


## 천재학습 (금성출판사, 전 24권)
이건 동화책이 아니라 일종의 학습서 비스무레한 것이었는데 꽤 재미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만화로 되어있는 내용도 많았고 토막상식이랄까 그런 식으로 된 것이라서.
엄마가 동생 것과 내 것, 이렇게 두 질을 사 주셨는데 (학년 구분이 있어서) 내 껄 하룻밤만에 다 읽어치우는 바람에 며칠 후에 반품시키고 다른 책으로 바꾼 일도 있었다. ^^


## 계림문고 (42)
어릴 적 책 얘기에서 빠질 수 없는 그 이름, 계림문고!!!
그때 돈으로 한 권에 480원인가 했는데 (과연 이 기억을 믿을 수 있을까;;;) 우리집에 함께 살던 외삼촌이 월급날 용돈을 주시면 동생이랑 눈썹 날리게 문방구로 뛰어가서 이번엔 뭘 살까 고민하던 그 즐거운 기억.
아주 다양한 종류의 책이 있었지만, 명탐정 홈즈 시리즈와 괴도 루팡 시리즈를 모으면서 남자아이들과 이거니저거니 너무나도 진지하게 입씨름을 벌이던 기억이 생생하다.



## 클로버 문고
계림문고가 온갖 동화 모음이었다면 클로버문고는 온갖 만화 모음. (가끔은 정체모를 동화?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드라큐라 이야기;;;)
이것도 꽤 여러 권을 모았지만 그 중에서 두 자매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가서 죽는 이야기와 (제목이 [나비는 여기 살지 않는다]였던가... 가물가물...) 다리를 못 쓰는 주인공이 인형을 애지중지하다가 다른 이야기 친구를 사귀자, 어느새 영혼이 들어간 그 인형이 친구를 죽이려 하는 이야기도 기억나고... (이것이 [유리 가면]을 그린 미우치 스즈에의 작품이라는 걸 얼마 전에야 알았다!!!)


## 그리고 또... (5)
아빠가 달마다 꼬박꼬박 사다주시던 [소년중앙].
집에 책이 많던 짝꿍이 하루에 한 권씩 책을 가져다 주면 쉬는 시간에 잽싸게 읽어치우고 집에 갈 때 돌려줬던 책들. 강소천 동화집과 천로역정과 또...
피아노 선생님 댁에 가서 앞 사람 끝나길 기다리면서 그 틈에 읽었던 가르강튀아 얘기와 소피 이야기...
친구네 집에서 본 딱따구리 그레이트 북스의 보리와 임금님...

어느틈엔가 다 잊혀졌지만 그래도 흐뭇하게 떠오르는 책에 얽힌 기억들.


2001/6/30
홈페이지 개장을 앞두고 초치기로 쓰면서...

2001/8/1
동생 책꽂이를 뒤지다가 육영사판 "소년"세계문학전집과 "소년"세계위인전기전집을 보고 목록을 덧붙여 봤다.

2011/12/31
지난 여름에 컴퓨터 하드가 날아가면서 매년 읽은 책 권수를 정리해 놓은 엑셀 파일도 없어져 버렸다... OTL 어쩔 수 없이 다시 정리하려고 '내가 읽은 책' 글을 보다가, 내용을 조금 더 채워넣을까 해서 검색에 들어갔다.

오오~ 놀라워라! 10년 세월에 강산만 변하는 줄 알았더니 오만 자료를 다 구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구나. 계림문고, 클로버문고 목록은 기본이고 그 옛날옛적 안데르센 전집 출판사까지 검색이 된다. @_@
덕분에 종일 검색하면서 2011년을 마무리한다.

2013/12/01
계림문고 읽은 목록 추가

diletant | 2001/07/01 01:00 | 책 이야기 - 내가 읽은 책 | 트랙백 |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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