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letant의 제.멋.대.로 쓰는 이야기

에쎈님께 바톤 넘겨받았습니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제가 그동안 읽은 책을 쭈욱 돌아보면 의외로 소설이 별로 없어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그나마 학생 때까지는 소설을 드문드문 읽었는데, 결혼을 하고 나서부터는 소설, 특히나 연애나 결혼을 그린 현실적인 소설은 거의 읽지를 못하겠더군요. 아마도 그 반동으로 어둠의 세계(…)에 빠져든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

1. 가지고 있는 소설
일반 소설은 별로 가지고 있는 게 없답니다. (책장을 주욱 훑어본 후) 조정래, 박완서, 강석경, 황석영, 전혜성, 김신, 이청준, 이문열(-_-;;) 같은 이름이 보이고, 외국 소설은 헤르만 헤세 책 몇 권과 은영전에 반지의 제왕, 쥬라기 공원, 음양사 등등, 그밖에 고리짝 적에 산 책들이 좀 있습니다.
일본 원서로는 구와바라 미즈나님 책 몽땅하고 은영전, 삼천세계, 잡다한 책 몇 권.
언제 읽을지 모르는 영어 원서 조금.

그에 비하면 어둠의 소설(…)은 정말 많군요…;;;
우리나라 동인지로는 호박대왕님, 란마루님, 스탠님, 에레쉬키갈님, 유우지님, 행복하자님 책이 있고요. (더 많은데 조만간 정리할 예정이라서 정리 대상이 아닌 이 정도만 밝히죠… ^^*)
상업지는 우오즈미 시리즈와 텐 이야기, 월릿.
일본 원서로는 츠키무라 케이, 사쿠라기 치사코, 에다 유리, 다케우치 리우토, 우에다 마유, 구리모토 가오루, 마츠마에 유리, 고도 시노부, 가시와에 마사토, 요시하라 리에코, 아키즈키 고, 미나미 후코, 미키 히로미, 가와이 유미코, 사카키 가즈키, 아사기리 유 등이 있습니다.

저도 이번 참에 가지고 있는 책을 한 번 세 봤습니다. 꼼꼼하게 헤아린 게 아니라서 대충 열 권 단위로만 적어 봅니다.
제 취향이 아니라 딸내미 요청에 의해서 산 잡다구리한 그림책/동화책/어린이책/만화책은 다 뺐고, 잡지, 교재, 실용서(요리책이나 옷본책, 기타) 같은 것들도 뺐습니다.

그리하여…
소설계가 710권. (소설책 80권, 동화책 230권, 창작 동인지 110권, 일어/영어 원서 290권)
그 외의 책이 860권. (그림책 80권, 기타 어린이책 100권, 인문사회 200권, 기타 어른책 70권, 국내/라이센스 만화책 280권, 일어 만화책 130권)
전부 합하면 1500권 좀 넘더군요. 생각보다 많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조만간 날 잡아서 목록 정리를 해야겠습니다.

2. 재미있게 읽어 본 소설 10가지
미리 말해두지만, 이건 ‘가장 좋아하는’ 10가지도 아니고 ‘가장 감동받은’ 10가지도 아닙니다. 물론 저 둘에 속하는 것도 여럿 있지만요.
어떤 이유에서든간에 읽으면서 굉장히 강렬히 기억에 남았고, 그래서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었던 책을 골랐습니다. (즉, 재미있게 읽었어도 두 번은 잘 손이 가지 않는 건 빠졌다는 얘기입죠) 순서는 읽은 순입니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 [앤 시리즈]
아마 제 생애의 첫 로맨스 소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어렸을 적부터 [빨간머리 앤]을 무척 좋아했는데, 6학년 땐가 우연히 서점에서 다섯 권으로 된 [앤 시리즈]를 발견했어요. 세로쓰기 책에다가 일본 중역판이라서 이름들도 무척 웃기고(앤 샤아리;에 마리라, 지므스…;;) 집 이름도 ‘유풍장(柳風莊)’ 하는 식으로 모두 한자 이름으로 된 책이지만 책장이 너덜너덜 떨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더랬지요.
얌전하지도 않고, 자기를 놀리는 남자애 머리를 석판으로 후려갈길 줄 아는 앤. 어려운 일이 닥쳐도 ‘길모퉁이를 돌면 어떤 앞날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정확한 기억이 아닐 듯;)고 말하며 포기하지 않는 앤이 무척 좋았습니다.
물론 자상하고 믿음직한 동반자로 있어주는 길버트도 마음에 들었지요. 언제나 앤이 하는 일에 지지를 보내며, 얌전한 현모양처로 있기를 강요하지 않는 점에서 백 점짜리 남편이랄까요. 그러고 보면 저는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상형(물 건너가긴 했습니다만;)이 별로 변하지 않았군요.

O. 헨리 [O. 헨리 단편집]
마지막에 가서 사람을 화들짝 놀래키는 것이 이 단편집의 매력이죠. 엄청 유명한 “크리스마스 선물” 이나 “마지막 잎새” 보다도 다른 이야기들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제목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군요… T_T)
어렸을 때는 그저 그 반전과 캐릭터들이 재미있어서 즐겨 읽었는데, 지금 다시 읽는다면 아마 ‘내 맘대로 안 되는 인생’ 에 대해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 같습니다. 돈 없이 겨울을 나 보려고 그렇게나 감옥에 가려고 애쓸 때는 무슨 짓을 해도 안 붙잡히더니, 부자가 되어서 한숨 놓은 순간 경찰관에게 끌려가던 그 청년이 가끔 생각납니다.

샬롯 브론테 [제인 에어]
씩씩한 여자, 포기하지 않는 여자를 좋아합니다. 제가 이 책을 좋아한 건 첫째도, 둘째도 그 이유지요. 마지막에 로체스터와 다시 만나서 결혼하지만 않았어도 지금보다 훨씬 더 이 책을 좋아했을 텐데 싶은 생각이 들긴 하지만, 남남이 맺어지면 뿌듯해 하면서 남녀가 맺어지면 혀를 차는 것도 차별이 되려나요. 복잡한 심정이네요.

마가렛 미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저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이 ‘스칼렛’ 이란 인물을 결코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굉장히 싫어하는 인물이라고 해야할 거예요. 제 눈에는 스칼렛이 지독히 이기적이고 생각 없는 인물로만 보입니다. 멜라니는 비현실적이고, 애쉴리는 옆에 있으면 제가 먼저 속 터져 죽어버릴만큼 답답하기 그지 없는 인물.
그렇지만 이 긴 책을 그렇게나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었던 건 아마도 그 끈질긴 생명력에 나도 모르게 끌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대사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힘들 때 가끔씩 중얼거려 봅니다.

조정래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이 세 소설은 ‘한국 근대사 시리즈’ 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가장 뒤에 나온 [한강]의 마지막 권을 덮었을 때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더군요. 이 길고 긴 시리즈가 이제 끝났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과 [한강]의 끝 문장을 읽었을 때 가슴에 퍼지는 그 무거움 때문에 나오는 한숨이요.
[태백산맥]은 대학 때 처음 읽었습니다. 한 서클 친구의 책을 친구들이 차례대로 돌려봤지요.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내 차례가 되어서 집에 가지고 온 책을 하얗게 밤 새워가며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그 가슴 저미는 느낌도.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PC통신 시절 드나들던 순정만화 소모임에서 사람들이 은영전, 은영전 떠들길래 궁금해서 찾아본 책입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한 은영전이 도착했는데 펴 보니 소설이 아닌 만화여서 경악했더랬죠. 어쩐지 값이 싸다 했지만(3천원) 문고본일 거라고만 생각해서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바보였습니다. ㅠ_ㅠ
사람들이 열광하는 화려한 출연진들이나 수많은 전투 장면(이건 남자들이 좋아하는 것 같더만요)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우리나라를 갖다 놓고 쓴 거 아닌가 싶은 장면 같은 것들(스타디움에서 군대가 시민들을 학살하는 장면이라든가)이 읽을 때마다 참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양 웬리라는 인물에 끌려서 읽습니다. 소설 자체로는 이것저것 눈에 보이는 흠이 많지만요.

구와바라 미즈나 [불꽃의 미라쥬]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차마 말할 수 없게 하는, 제게는 그런 책입니다.

츠키무라 케이 [그리고 사랑이 시작되다] [언젠가 푸른 하늘 아래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제 자신에 대해 참 여러가지로 많이 생각하고 돌아봤습니다.
기본적으로 성장 소설을 좋아하고, 서로의 아픔을 다독여주는 사람들이 나오는 책을 좋아합니다. 여러가지 힘든 일을 겪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는 주인공, 그리고 그를 옆에서 지켜주는 다른 주인공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에다 유리 [우오즈미 군 시리즈]
글쓴이도 다르고 분위기나 인물들의 성격도 다르지만, 좋아하는 이유는 위 책과 같습니다. 주인공을 탁류가 흐르는 강에 사는 물고기에 비유해서 얘기한 대목이 무척이나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번역판으로 읽었을 때는 무미건조한 느낌이 많이 들어서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는데, 원본으로 읽고 느낌이 너무 달라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 나쁘지 않은 번역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렇게도 많이 다를 수 있구나 하는 경험이었습니다.

호박대왕 [원 포인트 릴리프]
오류/오타에 민감하다면 민감한 제가 이 글 속에 있는 많은 삑사리(구성상 오류 얘깁니다)를 그냥 넘길 수 있게 만드는 게 무얼까 생각해 봤습니다. 딱 어느 한 사람이라고 찝어서 얘기할 순 없고요, 여러 등장 인물들의 성격이,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 어느 한 순간 제 자신의 이야기처럼 와 닿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얘기하긴 하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무척이나 잘 쓴 글이라고 생각하는데도 전혀 그 감정에 따라가지 못하겠는 글이 있고, 원포릴처럼 이 부분은 내 얘기 아닐까 싶게 절절하게 느껴지는 글이 있습니다. 제가 어떤 소설을 마음에 들어하느냐 아니냐는 결국 그 소설에 나오는 인물 중 어느 한 사람한테라도 감정 이입이 되는지 그 문제더군요.

3. 2번...중에 추천할 만한 소설은?
O. 헨리 단편집과 태백산맥, 우오즈미 시리즈.
마음 같아서는 미라쥬를 추천하고 싶지만, 여러가지 현실 여건상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책이 되기엔 좀 힘들겠죠. ^^;

4. 반면에 절대로 추천하지 않을 소설은?
글쎄요….
사실 책을 추천하는 것도, 절대 읽지 말라고 말리는 것도 참 조심스럽긴 합니다. 어느 누구한테나 재미있고 도움이 되는 책, 또는 누구에게도 하나 득 될 게 없는 책이라는 건 없다는 게 평소의 제 생각이라서요.
2번 중에서라면 추천하지 않을 소설은 없습니다.
그 밖의 책들 대상이라면… 역시나 이모티콘이 난무하는 “대본화(臺本化)” 된 책만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말리고 싶어져요. 특히나 아직은 좋은 책 읽기에 힘썼으면 좋겠다 싶은 아이들이 읽고 있으면 말이지요.

5. 바톤을 넘길 분
믿을 분은 스니키님뿐. 부디 이 바톤 받아주세요!!! T^T

스니키 at 2005-06-13 00:03
헛. 윤님. 슬쩍 보러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후후...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윤 at 2005-06-13 08:23
스니키님/ 받아주셔서 고맙사옵니다~~ ^^*

에쎈 at 2005-06-13 17:38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두 번은 절대 못 읽을 소설이죠. 첫 째로 그 엄청난 분량에 질려서이고 둘 째로 짜증만땅의 등장인물들에 질려서이죠. 전 그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스칼렛이고 버틀러고 간에 다 싫어요. 뭔 그런 베베꼬인 성격들이 다 있답니까. 조정래 씨의 아리랑과 한강 빼고는 다 읽은 작품들이네요. 취향이 얼추 비슷한 걸까요?(동인지는 아닌 듯한데;)

윤 at 2005-06-13 17:50
에쎈님/ 정말 짜증나지 않습니까? 읽다보면 이것들은 왜 다!!! 하며 저절로 욕이 나오지요. 그런데도 고등학교 때는 왜 그리 열심히 읽고 또 읽었는지 저도 의문스럽답니다. ^^;
그리고... 취향이 비슷해서라기보다는 에쎈님이 워낙 방대한 분량의 책을 읽으셔서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ㅠ_ㅠ

달댕이 at 2005-06-14 15:48
전 한강은 안봤습니다. 아니 못 보겠어요. 아마 나이를 좀 더 많이 먹은 후에 스스로를 다스리게 될 줄 알게 된다면 모를까 그 전에는 못 읽을 것 같아요.^^; 읽다가 힘들어 지쳐버리는 책은 아리랑과 태백산맥만으로도 너무 많았거든요.

윤 at 2005-06-14 21:41
달댕이님/ 한국 근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책을 읽다보면 정말 정신이 아득해진다는 말 말고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더라구요...

하루토 at 2005-06-15 16:41
바톤 넘겨받았다 는게 무슨 뜻인가요..><:;;;;

윤 at 2005-06-15 23:30
하루토님/ 아~ 그건요. 다른 문답처럼 그냥 다니다가 재미있어서 한 게 아니라, 한 분이 문답 마지막에 "댁이 하실라우?" 지정하면 "넵~" 하고 받아오는 걸 말한답니다. 물론 다음분께 넘길 때는 "부디 해 주소서!!!" 이 톤으로 바뀌지요. ^^*

2006/**/**
얼음집에만 올렸던 문답인데 뒤늦게 이쪽에도 올립니다.
링크와 트랙백은 원 문답에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