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바깥 날씨를 보니 우울한 마음이 더 가라앉는다.
텅 빈 투표소
어제 두 시쯤 투표소에 갔다.
지난번 대선 때는 그래도 투표소 바깥에까지 열댓 명 줄 서서 기다렸는데, 어제는 텅 비었더라. 내 바로 앞에 오신 분이랑 두 사람이 기표하고 나오는데 연이어 들어오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구. 투표자 명부 확인란도 헐렁하게 비었고.
하긴 남 말 할 게 뭐 있나. 우리집에도 투표 안 한 사람이 있는데.
투표하러 가자니까 "어차피 ○○○가 될 거잖아"란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 가서 당이라도 찍지 그랬더니 뭐가 꼬였는지(-_-++) TV만 보면서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 정말이지, 내 자식 같으면 패서라도 끌고 가겠구만 그럴 수도 없고 어찌나 실망스러운지.
기권도 의사 표시 형태의 하나라는 궤변은 하지 말자.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사실 그게 아니라는 거 다 알잖아?
선거 결과를 보며...
한나라당을 비롯한 소위 '보수세력'(말이야 바른 말이지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보수정당이 어디 있나!)이 득세할 거라는 건 벌써부터 너나 나나 다 알고 있던 사실이니 각오는 했다. 그래도 막상 뚜껑을 열고 속속들이 전해지는 결과를 듣다 보니 너무나 참담한 심정이다.
내가 지지한 정당은 0.1%가 모자라서 비례대표도 내지 못하게 됐고...
심상정, 노회찬, 김근태 씨 낙선. 내가 TV 지켜보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백 표 정도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이기고 있던 한명숙 씨도 두어 시간 후에 보니 낙선.
이 사람들 대신에 국회에 들어갈 사람인즉슨, 성추행범에, 철새에, 말이 좋아 독설이지 상식 이하의 발언을 서슴지 않던 前대변인에, 부잣집 도령에... 아, '살아서 돌아오라'는 말을 충실히 지켜서 '살아 돌아온' 그 사람들도 있군.
정말로 당 이름만 보고 표를 던진 걸까? 그렇다고 보기엔 정당 지지율과 맞지 않는 면도 너무 많은데. 사람들은 '자신을 대변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게 아니라, 자기가 '그렇게 되고 싶은 요소를 많이 가진' 사람, 즉 많이 배웠거나 부자거나 출세했거나 하는 사람들에게 표를 던진다는 얘기를 얼마 전에 읽었는데 맞는 소리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그래도 '최저선'이라는 게 있지 않나. 절대로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이 떡 하니 당선되는 걸 보니, 우리는 정말로 윤리니 정당성이니 하는 걸 다 내팽개치고 '부자 되세요'에 취해 있는 시대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절망스럽다.
그리고 친박연대니 무소속연대니 해서 공천에 탈락하고 뛰쳐나왔다 당선된 사람들이 하나씩 차례로 다시 복당하겠지. 절대 복당은 있을 수 없다던 당 대표는 벌써부터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을 바꾸고 있고.
하.하.하.
개그 프로 따로 볼 필요가 없다.
20대
이곳저곳에서 치열하게 말싸움이 벌어지고 있더라. 20대의 정치 무관심, 보수 지향성에 대해서. 사실 나도 20대가 30~40대보다 오히려 보수 정당 지지율이 높다는 조사 결과를 보고 충격 좀 먹었다.
젊은 사람이라고 보수정당을 지지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다만, 자신의 주체적인 판단에 의한 선택이라기보다, 당장 눈 앞의 취업이 급하다 -> 우린 88만원 세대라지 -> 새 정부와 여당이 일자리 늘리고 경제 살린다더라 -> 그래서 여당 지지...면 그나마 낫고. (낫나?;;)
아씨, 정치가 밥 먹여주냐? 내지는 그놈이 그놈이더라, 해 봤자 뭐가 바뀌는데? -> 귀찮다 -> 투표 안 해! 이게 너무 무서운 거다.
그리고 적어도 20대라면 현실도 중요하지만 아직은 이상적인 것을 선택할 때가 아닐까. 기성세대보다 더 현실에 안주하는 젊은 세대는 보고 싶지 않다. 이런 내가 비현실적인 거라는 소리를 들을지라도.
내 생각과 비슷한 글 두 개
한겨레/ 한국 정치의 비극 (2008/04/10)
내용 전부에 찬동하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인 줄거리는 내 생각과 비슷.
프레시안/ 신자유주의 우파 혁명 앞에서 (2008/04/10)
사실 나부터가 우파니 좌파니 하는 용어에는 아직도 거부감이 들지만 제목보다 내용에 주의를 기울여 보자.
부록: 나도 이러고 싶었다
미디어다음/ 무효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