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에 여행 준비하면서 가입한 유럽 여행 카페가 있다. 회원층은 다양해서 최하 초등학생(우리집 딸내미도 6학년 때 이름은 걸어놨으니까 ^^;)부터 50을 훌쩍 넘으신 분까지 있고, 대부분은 패키지 여행이 아닌 자유 여행을 준비하러 들어오는 사람들이다.

워낙 회원수가 많으니 하루에 올라오는 글도 많은데, 이제까지 만 2년 동안 그 카페에 드나들면서 게시판에서 본 질문 중에 제목의 저 질문이 아마도 몇 손가락 안에 들만큼 많은 질문일 거다.

처음에는 저런 질문 보면
'그래 떠나기 전엔 얼마나 불안하겠어, 들리는 얘기도 많고 하니까 그렇겠지...'
뭐 이런 심정이었는데, 하도 많이 보다 보니 이제는
'아 여자 혼자가 뭐 어떻다는 거야!!!
그럼 여자는 따라갈 사람 없으면 평생 여행도 못하나!!! -_-+++'
가끔 이렇게 댓글 달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누르고 있다. ^^;;;

물론 내가 겪을 것 다 겪은(?!) 중년(ㅠ_ㅠ) 아줌마라서 갓 스물 넘긴 처자들의 마음가짐과는 많이 틀리기도 하겠지만, 어째 요즘은 예전보다도 더 연약한(척 하는? 아니면 진짜로 연약한?) 처자들이 많은 것 같다. 지금이 여자들은 조신하게 집-학교만 왔다갔다 해야 한다고 교육받는 시대도 아니고, 남자들과 대등하게 경쟁하며 자랐을 사람들이 마음가짐은 왜 그리 소심한지 정말 궁금하다.

이제까지는 젊은 사람들이 변하는 것에 나이 많은 사람들, 그리고 사회 전체의 변화가 못 따라간다고 생각했는데, 가만 보면 젊다고 해서 많이 변하지도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주위에서 사람들- 대부분은 도와주는 것 하나 없는 사람들- 이 뭐라 떠들든간에 먼저 그렇게 주눅 들 필요가 뭐 있나.

사실 여자 혼자나 여자 둘이나 오히려 여행 다니면서 심심한 것에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위험도가 뭐 그리 다를 것도 없을 거고. 또 남자 일행이 있다고 해서 사소한 치근덕거림이나 그런 걸 막아줄 지는 몰라도, 어차피 중대한 사건 일어나면(물론 안 일어나야겠지만;;;) 다 똑같지 않을까. 남자라고 강력 범죄 앞에서 별 수 있냐 말이다.

내가 위의 내용을 조금 간단&순화시킨 내용으로 그 카페에 글을 올리면서 마지막으로 쓴 석 줄.

조금 더 용감해지면
사는 게 더 재미있어집니다.
진짜로요. ^^

정말 그렇다. 장담한다.


덧글1>
혹시 오해가 있을까봐 덧붙이자면, 결코 진짜로 위험한 지역을 여행하면서 저 질문이 나오는 게 아니다. 영국, 프랑스를 비롯해서 이탈리아, 스페인 등등.
뒤쪽 두 나라는 소매치기 소문이 워낙 많이 돌아서 그렇긴 하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우리나라는 뭐 안전한가. 저녁 뉴스 보고 있으면 한숨만 나는데.

덧글2>
내가 '약한 여자'를 지나칠 정도로 싫어하는 건 인정한다. 아니 '약한 여자'라기보다는 '나 약해요'를 전혀 거리낌없이 내세우는 여자가 싫다고 해야 할까.

덧글3>
그래도 무거운 가방 가지고 가도 되냐는 질문에 '유럽 가면 남자들이 다 도와줘요'라는 대답은 너무하지 않나. 자기가 무거우면 남도 무거운 거다. 남이 베푸는 친절은 고맙게 받더라도 처음부터 시켜먹겠다고 생각하는 건 다르지. 어디까지나 '내 짐 무게는 내가 감당할 수 있을만큼'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잘못된 건가.
어떨 땐 20년 전과 지금은 완전 딴 세계 같다가도 도대체 20년 전과 뭐가 달라졌나 싶기도 하고.

덧글4>
이 글과는 별로 상관없지만, 여자들 중에 '착한 딸 증후군', '착한 소녀(!) 증후군'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인 사람들이 생각보다 엄청나게, 무지하게 많더라. 충격적일 정도로. 처음에 한두 사람 봤을 때는 그런 사람들도 있겠거니 했는데, 이게 어떤 상황에서는 대다수를 차지하는 걸 보고 난 내가 '비정상적으로 나쁜 딸'에 '나쁜 아내'인지를 심각하게 생각했다니까.

diletant | 2008/03/22 01:42 | 혼자 끄적대기 - 생각 | 트랙백 |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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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토끼 2008/03/26 01:32 x 착한 딸 컴플렉스 참 무섭죠. 근데.... '콩쥐병'도 꽤 주변인들 힘들게 하더군요...;; 용감하세요! 해외여행을 혼자! 전 아주 기본적인 영어조차 울렁증이 나서 엄두도 못냅니다.하하하;;; 차라리 일본에는 혼자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한번 다녀온 적 있어서 그런걸까요.. 역시 뭐든 첫 시작이 어려운거겠죠.. diletant 2008/03/26 02:14 x 약토끼님/ 하하하;;; 제 앞에서 영어 말씀을 하시다니... ㅠ_ㅠ 제가요. 제대로 말할 수 있는 문장이 열 개도 안 되는 수준으로 여행 다니잖습니까. 에피소드(이라기보다 '치욕담' ㅠ_ㅠ) 하나 말씀드리자면... 돌아오기 전날, 호스텔 사람이 저보고 몇시에 호스텔에서 나갈 거냐고 하더라고요. 6시 반이라고 하고 싶은데 six밖에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다 알 저 말이요!!! 제가 당황해서 완전히 버벅거리고 있으니까, 그 사람이 저 보고 괜찮다고 relax하라고 위로;;;해 주더군요. 속으로 그랬죠. ('미안해. 나 relax해도 어차피 영어 안 나와... ㅠ_ㅠ") 그밖의 수많은 치욕담은 다음 기회에. ^^; 우지 2008/04/07 12:21 x ㅋㅋㅋ 또 웃었네요.. 신혼여행을 필리핀으로 갔을 때 저희 신랑과 약간 증상이 비슷하다 보심 됩니다. 반면 저희 신랑은 절 대책없는 사람으로 보지요..;; 참고로.. 전 해외여행이라곤 신혼여행이 첨이자 다입니다. 저희 신랑은 미국을 출장과 학회 땜시 3번이나 다녀온 사람입니다. 것두 경유 노선으로 말이죠..;; 난 영어도 못하는데...;;; 대책이 없는 거 맞는 거 같기도 하고;; diletant 2008/04/08 01:46 x 우지/ 나도 따지자면 대범하다기보다 오히려 소심한 편에 속하고, 여행 가기 전에도 준비 철저히 해야 마음이 놓이고 그런 편이긴 해. 하지만 어차피 갈 거, 미리부터 기어들어갈 필요가 있나 싶은 거지. 영어야 뭐 못해도 여행할 수 있긴 하더라. 다만 불편할 뿐...;;; 이름 ::   비밀번호 ::   홈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