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letant의 제.멋.대.로 쓰는 이야기

2005/12/28~2006/01/31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 2005년작/ 김태웅 <爾 (이)> 원작
감우성 (장생 역)
이준기 (공길 역)
정진영 (연산 역)

여섯 번을 되풀이해 보면서 그때마다 감상을 써 보려 했지만, 매번 아득한 느낌만 남을 뿐 말로 풀어낼 길이 없어서 그냥 닫곤 했다. 지금은 많이 옅어졌지만, 이 영화를 첫 번째로 극장에서 보고 돌아오던 길에 가슴 속에 휘몰아치던 그 이상한 아픔은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맨 처음 봤을 땐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공길의 마음과 어여쁨에 눈이 멀고.
두 번째 봤을 땐 미친 왕의 그림자 놀이에 눈이 멀고.
세 번째 봤을 땐 줄 위에서 사설을 푸는 장생에게 눈이 멀고.
그리고 또...
그러는 내내 영화 속에 흐르는 음악과 풍물, 놀이판, 한복의 자태에 눈이 멀고... 그랬더랬다.

그 중에서 유독 마음이 가 닿았던 이는 공길과 연산.
손인형의 입을 통해서만, 그림자 뒤에 숨어서만 자신의 속내를 토해낼 수 있는 공길과 연산을 보고 있노라면, 그네들의 마음에 난 수많은 상처가 잡힐 듯 보여서 가슴이 쓰려왔다. 여러 사람들이 연기가 어설프다, 영화에도 이런저런 빈틈이 많이 보이더라 얘기할 때도 그런 건 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난 왜 아직도 이렇게 '상처입은 마음' 에만 매달리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그렇게 한동안 나를 사로잡았던 공길과 연산이 애틋하고 슬펐다. 그리고... 마지막에 줄 위에 올라서서 목청껏 외치던 공길의 모습이 그래서 더욱 아름다웠다.

어느덧 영화 본 이 8백만이 훌쩍 넘으니 인터넷을 떠돌다보면 여기저기에 영화의 속뜻과 그들의 마음을 캐내보는 날카로운 글이 참 많이도 있지만, 난 미처 그걸 다 이해하지도 못했고 그럴 필요도 못 느낀다. 감독이 의도한 장치와 속뜻 다 알지 못하고 보면 어떠한가. 자기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받아들이면, 그러면 되지 않을까.
(물론 영화에 나오는 왕이 연산군이라는 것도 모르고, 혹은 알더라도 왕이 어머니를 절절하게 그리는 연유도 몰라서 절대로 웃음 나올 수 없는 장면에서 폭소를 터뜨리는 사람들까지 괜찮다는 건 아니다. 그 사람들은 정말 너무했다...)

마음에 남는 장면들, 말들이 참 많지만 내 허접한 글솜씨로는 그 느낌, 제대로 옮기질 못하겠기에 그냥 가슴 속에서만 담아두련다.
그리고, 영화 전편에 흐르는 음악이 참으로 듣기 좋았다.

2006/01/15
연극 "이(爾)"
김태웅 작/연출
이남희 (연산 역)
박정환 (공길 역)
이승훈 (장생 역)

영화에 앞서 연극을 먼저 봤더라면 느낌이 많이 달랐을까 궁금했다. 게다가 내용이 궁금해서 희곡을 읽고 갔는데 오히려 그게 마이너스로 작용한 듯.
아무리 원작이라지만, 갈래가 달라졌을 때 벌써 두 작품은 서로 다른 길을 걷는다. 연극과 영화를 비교해서 옭아매지 않고 자유로이 보는 것이 양쪽 모두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일 게다. 영화의 수렁에서 채 빠져 나오지 못한 나에게는 불가능한 것이었지만...

...연극이 끝날 때까지 연산의 그 독특한 말투며 높낮이에 적응을 못해서 괴로웠다.

※ 요건 영화 보고 온 날, 다른 곳에 남겼던 글

첫 번째(2005/12/28) 보고 와서 쓴 글

여섯 번째(2006/1/31) 보고 와서 쓴, 조금 가벼운 글